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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맹이 이야기

팀 버튼의 배트맨1)에서 잭 니콜슨이 연기했던 조커는 정말 매력적인 캐릭터였지요. 강력한 악당이면서 포스트모던한 예술감각도 가지고 있고 여유와 재치가 있는, 흔히 생각하는 일반적인 악당의 범주와는 다른 매력이 있었고 그 때문에 여전히 인기가 많은 악당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의 조커가 꼭 확실한 분수령이라고 말할 수 없겠지만 그 이후로 배트맨 영화에서 나왔던 조커의 모습이 많이 굳어져 버린 것도 사실이고 히어로 무비에서 매력적인 악당의 역할이 주인공 만큼이나 중요해졌다고 이야기해도 과언은 아니겠지요.


"그가 연기한 조커는 여유와 재치가 있어요. 그러면서도 배트맨에게 뒤지지 않는 강한 악당으로 그려집니다. 

그가 행하는 악행이 곧 그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이자 즐거움 이었지요."


그렇기 때문에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나이트2)에서 조커가 나온다고 했을 때에 많은 사람들이 팀 버튼과 잭 니콜슨이 만들어낸 조커의 그림자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인지 걱정을 했습니다. 특히 히스 레저라는 유약한 이미지를 가진 배우가  잭 니콜슨을 뛰어넘는 조커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선 매우 부정적으로 반응을 보였지요. 하지만 막상 놀란 감독의 다크나이트에서 조커는 히스 레저의 신들린 연기와 감독의 절묘한 편집이 더해져 조커가 나오지 않는 부분에서도, 아니 영화 전반적으로 그의 아우라를 뿜어냅니다. 블록버스터와 히어로물이라는 장르적 한계를 딛고 각종 영화매체에서 극찬을 받으며 영화의 표준을 높여버렸지요.



"그는 비뚫어진 사회 속에서 자란 혼돈이에요.그래서 논리적으로 대할 수가 없는 광기로 조커를 연기했지요.

히스의 조커는 알 수 없고 두려운 존재로 그려집니다."


이렇게 다크나이트의 조커 이야기를 꺼내는 건 조커에 대한 캐릭터 표현엔 서로 다른 면이 있지만 조커라는 캐릭터가 가진 행동 양식을 다크나이트와 킬링 조크가 많은 부분을 공유하기 때문입니다.

조커는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악당과는 거리가 멀어요. 그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염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타락하는 모습을 즐기는 특이한 악당입니다.

지금의 세상은 너무나 혼란해서 누구에게나 '사소한 불행'은 찾아올 수 있고 그런 일들을 견디려 하지 말고 함께 미쳐버리면 된다고 이야기하는 만화속의 대사와, 광기는 중력과 같아 조금만 굴러갈 수 있도록 해주면 그 후부터는 알아서 속도가 붙는다는 영화 속의 대사는 두 작품에서 조커가 매우 비슷하게 그려지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지요.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대변해줄 누군가를 찾아 '사소한 불행'을 안겨주려고 합니다. 킬링 조크에서는 짐 고든에게 그리고 영화에서는 하비 덴트에게.



사소한 불행과 비뚫어진 사회는 자신이 피해자임을 주장하며 같이 미쳐버릴 것인지, 

자신은 감시자임을 주장하며 신념을 지킬 것인지 선택하는 순간을 만듭니다.

덴트와 고든은 두 선택의 상징임과 동시에 조커와 배트맨의 대변인이기도 하지요


사소한 불행과 비뚫어진 사회는 사람들에게 선택을 하게 만듭니다. 자신이 피해자임을 주장하며 같이 미쳐 버릴 것인지 아니면 감시자를 자청하며 신념을 지킬 것인지 선택하게 하지요. 

하비와 고든의 선택은 매우 달라요. 영화에서 하비는 조커가 만든 불행을 견디지 못하고 투 페이스가 되어버리지요. 세상이 불공정하고 미쳐버렸다는 걸 인정해버리고 그는 확률만이 가장 공정하다고 말하며 동전을 던지는 정신이상자가 되어버립니다. 물론 그 동전도 공정한 확률이 아닌 그가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내는 일그러진 확률을 대신하지요.

하지만 고든은 끝까지 자신의 정의를 관철하고자 합니다. 아주 큰 불행과 좌절속에서도 배트맨에게 조커를 죽이지 말고 꼭 자신들의 방법으로 조커를 잡아오기를 부탁하지요.

이런 대조점에서 킬링 조크가 아주 죽여주는 부분은 조커와 배트맨의 두 캐릭터가 세상이 불공정하고 미쳐있다라는 명제를 인정하고 그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거에요. 그렇기 때문에 배트맨과 조커 사이에 우정과 연민이 흐르는 분위기를 연출해 낼 수도 있었던 거지요. 불과 5분전까지만 해도 서로를 죽여야할 듯이 싸우면서도 조커가 던진 농담에 서로 웃음을 주고 받는 엔딩이 가능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악당에게서 고담을 지키는 영웅과 고담에서 가장 무서운 악당이 서로 같은 근원을 가지고 있다니, 이런 죽여주는 농담이 어디에 있을까요.


농담이기 때문에 이야기는 길지 않습니다. 오히려 무척 짧은 편이지요. 브라이언 볼런드는 앨런 무어가 만든 이 짧고 완벽한 줄거리를 완벽하게 그림 위에 올려둡니다. 특히 색으로 내러티브를 변주하는 기술은 가히 예술이에요.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구도와 색을 절묘하게 이용하는 컷에서는 영화에서 나올법한 편집들 이상으로 감동을 전해줍니다. 색과 구도, 컷 사이의 연출이 매우 세련되어 대사가 아닌 그림에서도 문학적인 내러티브를 충분히 전달해 주고 있어요. 

완벽한 이야기와 완벽한 그림. 이정도면 가볍게 볼 만한 만화가 아니라 어느 하나 부족함없는마스터피스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듯 합니다.


껍데기 이야기

원본의 표지를 그대로 써줘서 정말 고맙습니다.

하드커버로 내주어서 정말 고맙습니다.

좋은 종이로 책을 내주어서 정말 고맙습니다.

이 책을 발매해주어서 정말 고맙습니다.


주렁주렁 굴비

1) 배트맨 Batman, 팀 버튼 감독, 마이클 키튼, 잭 니콜슨 주연, 1989

2) 다크나이트 Dark Knight,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크리스천 베일, 히스 레저 주연, 2008

Posted by MoonGoM


군대에 있을 때 '켠김에 왕까지'에서 언챠티드를 깨는 걸 본 적이 있어요. 그래픽이며 연출까지 감탄을 금치 못했고 그때 너티독의 위엄을 처음 접했지요. 제대하면 꼭 플레이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제대하니까 3편이 나왔다는 것도 까먹고 지내게 되었어요.

그러다 너티독의 신작으로 라스트 오브 어스가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고, 정말 거짓말이 아니라 이 게임을 하기 위해 플스3를 구매하고 라스트 오브 어스를 사버렸네요.


가끔 알다가도 모를 결단력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정말 거짓말 같이 정신을 차려보니 플스와 라스트오브어스 디비디가 제 손에 들어와 있더군요


쉬움 난이도로 14시간 남짓하니까 모두 클리어가 되네요. 정말 폭풍같은 시간이었고 이 게임을 위해 플스를 구입한 것에 대해 전혀 후회가 없어요. 오히려 안샀으면 어떻게 했을까란 걱정이 들었으니까요.

스토리가 굉장한 게임입니다. 물론 독창적이거나 유일한 이야기라고는 절대 이야기 할 수 없지만, 게임내에서 모든 연출과 기술이 스토리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모든 힘을 다하고 있고 탄탄한 스토리가 그런 수고가 아깝지 않도록 받쳐 주고 있어요.


새롭지는 않지만 아주 탄탄한 스토리와 인물들. 

그리고 이를 받혀주는 환상적인 그래픽과 연출들이 이 게임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어줍니다. 


그래서 게임을 끝내고 나서 기억에 남는 BGM이 없고, 손에 땀을 쥐게 했던 액션 연출이 몇 없다고 해도 이는 절대 흠이 되지 않습니다. 조용조용히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고 상황을 이겨내는 인물들에게 한 껏 몰입하고 있었으니까요.

게임 내에서 보여주는 기술도 일품입니다. 종말을 맞은 세계를 그려낸 그래픽이며 표정으로 전달되는 인물들의 감정, 그리고 수준 높은 목소리 연기도 빠질 수 없지요.


이렇듯 스토리에 집중하기 때문에 아쉽게도 높은 자유도를 가진 오픈월드 형식은 아니에요. 오히려 게임을 조금 더 쉽게 만들어주기 위해 가지 못하는 장벽이 많은 편이지요.

전투마저도 주인공들이 월등한 능력을 보여주지도 않기 때문에 전투를 할 때마다 전략을 선택해야만 해요. 제일 쉬운 난이도에서도 말이지요. 다수에 둘러 쌓이면 일단 후퇴를 해서 싸우기도 해야 하고 아이템 크래프팅도 실시간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전투 중에 칼이나 화염병을 만들 땐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특히 클리커를 상대로는 난이도와는 상관없이 물리면 한 방에 죽기 때문에 항상 만반의 준비가 필요하지요.


"잘들어. 나한테 물리면 넌 그 즉시 게임 오버야. 니가 아무리 쉬운 난이도를 선택했다고 해도 말이지"

"봐주는게 없다니! 난 콘솔 게임이 처음이라고!"


스토리를 끝낼 때 쯤엔 조엘은 100명을 넘게 죽인 극악무도 살인범이지만, 전투에서 너무 강하게 밸런스가 잡혀있지 않으며 또 전투에서 아주 강하게 표현되지 않는 이유는, 물론 조엘의 나이를 고려한 연출이기도 하겠지만, 단순히 조엘이 엘리를 지켜주는 보모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며 이로 인해 더욱 의존적이고 깊은 유대를 쌓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연출이나 기술 뿐만 아니라 난이도와 밸런싱마저 스토리를 위해 맞춰져 있는 거지요.


조엘이 엘리에게 총을 가르치는 장면은 서로가 믿고 있다, 의존하는 관계이다라는 단순한 말보다 

훨씬 많은 걸 담고 있습니다. 괜스레 울컥해지는 장면이에요.


아까 잠깐 이야기 했지만 독창적이거나 아주 새롭지는 않아요. 디렉터의 인터뷰나 여러 리뷰에서 볼 수 있듯이 스토리의 전체적인 구성이나 연출 방식은 코맥 매카시의 더 로드를 아주 많이 닮아 있고, 군데군데 배경 디자인은 윌 스미스가 주연을 맡았던 나는 전설이다와도 비슷합니다. 

하지만 다른 비슷한 작품들보다 라스트 오브 어스가 가질 수 있는 경쟁력은 오히려 게임이라는 점이에요. 영화나 책에선 캐릭터에 감정이입을 하기 위해 조금의 집중력과 감수성이 꼭 필요하지만 게임은 조작을 하다보면 자연스레 캐릭터와 집중하고 동화할 수 있지요.

스스로 조엘이 되어 엘리와 대사와 행동을 주고 받으면서 감정을 나눈다는 점, 스스로 엘리가 되어 처한 역경을 해쳐나간다는 점은 책이나 게임이라는 장르를 선택한 라스트 오브 어스를 더 특별하게 만들어 주어요.


인물에 대해 몰입을 할 때, 게임만큼 쉽고 감동적이게 캐릭터의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매체가 또 있을까요


만약 게임을 좋아하는 분이시라면, 혹은 예전엔 게임을 사랑하셨던 분이라면 라스트 오브 어스는 게임을 사랑했던 이유를 다시 확인시켜줄 거라고 믿어요. 아니, 게임을 즐긴다는 걸 다시금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게 해줄 거라고 믿습니다.

그나저나 이제 플스는 어떤 용도로 돌려야 할까요?

Posted by MoonGoM


거대 로봇입니다. 그것도 두 사람이 조종하는 로봇으로요.


너무 단점과 장점이 뚜렷해서 다른 사람들에겐 호불호가 뚜렷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영화 자체엔 극장에서 보기 꺼려지는 이유가 많이 있어요.

스토리는 어디선가 침략해온 괴수들에 대응하는 거대 로봇 이야기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아니 이쯤되면 오히려 뻔뻔하게 변주 없이 클리셰를 사용했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SF적인 설정에 충실한 것도 아니에요. 로봇은 조종사의 의식에 연결해서 싸우는 시스템이지만 한 명으론 뇌가 버티지 못해서 조종사 두 명의 정신을 연결한다는 드리프트 시스템은 참신해도 독창적인 시스템은 아니며, 영화 내에서 사실 중요한 화제도 아니구요. 그리고 예거와 같은 로봇을 만들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직 생활 기술은 저 정도 수준인가라는 의문이 드는 장면들도 있어요. 딱히 구멍이 있다라는 설정은 없지만 제임스 카메론 영화에서 다루는 세세하고 과학적인 설정까지 바라지는 못할 거에요. 그러니까 SF 팬을 위한 영화도 아니라는 거죠.

매력적인 캐릭터들도 거의 없어요. 영화가 끝나고 나오는 길엔 어쩌면 기억나는 캐릭터가 하나도 없을지도 모릅니다.

카리스마를 보여준 이드리스 엘바나 어린 마코를 연기한 마나 아시다와 영화에선 처음으로 맨 얼굴을 론 팔먼을 빼곤 인상깊은 캐릭터가 없으니까요. 그리고 그 인상도 대게 영화 내적인 부분보단 외적인 부분때문에 남은거니까 영화와는 관계없군요.

이 쯤되면 감독이 길예르모 델토로가 맞는지도 의심스럽기도 합니다. 헬보이에서 보여주었던 독창적이고 매력적인 캐릭터나 판의 미로에서 보여주었던 함축적인 내러티브 중 어느것도 퍼시픽림에선 찾아보기가 힘드니까요.

최근에 개봉했던 블럭버스터라도 슈퍼맨과 월드워Z와도 이런 점이 다른 것 같습니다. 앞의 두 작품은 탄탄하다고까진 말 못해도 진지하게 고민한 내러티브가 있으며 몰입할 수 있는 캐릭터가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만약 앞서 말한 단점들이 걸리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정말 시끄럽고 지루한 영화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거대한 로봇의 조종사를 꿈꿨다거나 로봇이 걸을 때 땅이 울리는 쿵쾅 소리, 관절이 움직일 때 나는 기어소리에 한 번이라도 설레본 적이 있다면 앞의 단점들은 비교도 안될만큼 커다란 장점을 가진 영화로 탈바꿈합니다. 아니 어쩌면 딱 이런 팬층을 노린 영화로 대중 영화라기 보다는 특정 층을 노린 팬무비라고 보는 것이 더 옳을지도 모릅니다.


SIZE DOES MATTER


매력적인 로봇들이 나오고 그들이 거대괴수로부터 지구를 지켜줍니다. 아이언맨이나 슈퍼맨같은 히어로나 전직 FBI나 UN의 특수요원이 아닌 로봇이 말이지요. 그들의 박진감 넘치는 화면 아래 사운드의 조립과 3D 효과도 정말 괜찮습니다. 육중하고 둔착한 소리가 로봇의 주먹에 감겨 들리는 순간엔 스트레스도 풀리는 것 같으니까요. 엘보 로켓을 외치며 팔 관절에서 엔진음이 들리고, 카이주를 때리는 순간은 정말 최고로 흥분되는 장면이었어요.

캐릭터와 내러티브를 날린 대신 델 토로 감독은 사람들이 거대 로봇물에 원하는 게 뭔지 제대로 알고 제대로 연출해줍니다. 어떻게 표현해야 로봇이 더욱 커다랗게 보이는 지 알고 있고, 괴수와 어떻게 싸워야 더욱 박진감 넘치는 지 잘 알고 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요.


올해엔 정말 기다렸던 작품들이 많았고 앞으로도 많이 나올 예정이지요. 하지만 아마 올해 최고로 좋아할 영화는 퍼시픽림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어요. 좋은 영화가 아니라 좋아하는 영화말이죠. 정말 머리로는 단점들이 정말 많이 지나가지만, 가슴에서 최고라고 외치네요.

만약 스토리나 캐릭터따윈 기억나지 않더라도 로봇액션이기 때문에 극장에서 봐야한다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로봇 AI의 목소리가 포탈2에서 글라도스를 담당했던 엘런 맥클레인이라는 걸 알고 흥분할 수 있다면 퍼시픽 림은 최고의 영화가 될 수 있을거라 믿습니다.

Posted by MoonGoM


알맹이 이야기

미국의 인디언 토벌에서부터 스페인 내적 개입까지의 긴 전쟁이야기가 주 배경입니다. 하지만 전쟁을 풀어가는 방식은 조금 독특한데, 전쟁을 담담하게 이야기해서 별거 아닌 듯이 묘사하지만 전쟁이 가지고 있는 그 자체의 비인간적인 모습은 놓치지 않아요. 미국은 정의의 편이고 인디언이나 스페인은 악당이라는 전제가 아닌, 전쟁 때문에 고통받는 약자들과 전쟁으로 이익을 보는 누군가가 있다는 불합리만을 보여줍니다. 

주인공들이 전쟁안팎으로 겪어야 하는 내적 고민과 외적 갈등을 더욱 집중하는 데 전쟁이라는 배경을 이용하면서도, 전쟁이 가지고 있는 비인류적인 모습을 놓치지 않는다는 게 이 책이 꼭 읽어야하는 고전으로 손 꼽히게 해주는 듯 합니다.


살리나스 계곡의 모든 사람들은 적어도 하나 쯤 모자란 것이 있어요. 누군가는 애정이 결핍되었거나 경제적으로 부족하거나, 양심이나 도덕성이 부족하지요. 그런 결핍으로 심한 비참을 느끼기도 하거나 자살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이런 필연적인 결핍은 인간의 원죄 때문이라고 합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원죄를 가지고 있고 그 원죄는 인간이 피할수 없는 결핍을 만들지요.

하지만 그 원죄는 우리 세대 이전의 아버지, 아버지의 그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의 아버지 세대를 타고 넘어왔던 것이라 죄의 시작은 우리가 아니며, 피할 수 없는 결핍이라도 스스로 메꾸어 나갈 수 있다고 책은 이야기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원죄 역시 운명적으로 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짓지 않을 수도 있는 선택이라는 이야기도 함께 전해주지요.

이 모든 이야기를 압축한 팀셸이라는 말이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에요. 팀셸, '너는 죄를 다스릴 수도 있을 것이다'라는 말로 원죄도 구원도 스스로 선택해서 스스로 구하는 것이라고 말하지요.


무언가 하나 쯤 아프고 부족해도 구원과 희망 역시 자기 손으로 만들어가는 거란 말이 정말 따뜻하게 느껴지는 책이었습니다.



껍데기 이야기

민음사는 책 옆 표지를 작가 사진과 제목으로 통일 시키고 있어요. 신간이 꾸준히 나오는 중이라고 해도 100여권이 는 전질에 이런 통일성을 유지한다는 건 무척이나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디자인 센스가 나쁘지 않거든요.

이 책을 각본으로 한 영화1)는 보지 못했지만 제임스 딘이 출연 했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사실 그의 얼굴이나 사진을 제대로 본 적은 없지만 책 표지에 있는 사람이 제임스 딘이라는 건 한 눈에 알 수 있었지요. 그가 과연 누구를 연기했을 지를 찾는 재미도 책을 읽는 재미 중 하나엿어요. 1권과 2권 반 쯤까지는 그가 애덤을 연기하지 않았을까란 생각을 해봤지만, 다 읽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가 연기 할 사람은 역시 칼렙 밖에 없었을 것 같네요.



주렁주렁 굴비

1) 에덴의 동쪽 East of Eden, 엘리아 카잔 감독, 제임스 딘 주연, 1955

Posted by MoonGoM

알맹이 이야기

[세상의 신비에 대해 호기심을 보이면서 종교는 빛을 잃기 시작했다. 그건 과학의 몫이다. 비앵브뉘 각하는 세상의 신비보다는 신이 미처 다 돌보지 못하는 불쌍한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1)에서 나오는 비앵브뉘 주교에 관한 구절입니다. 하느님의 사명이라 믿으며 착하게 살아온 이 순박한 사람을 보면서 각하는 종교를 믿어서 선하게 살 수 있었던 걸까 아니면 종교를 믿지 않았어도 똑같이 살았을까 고민해본 적이 있어요.

위의 이야기처럼 종교는 도덕의 배경인 것일까요. 만들어진 신을 읽어보자고 결심한 이유는 이런 궁금증에 대해 대척점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 지가 궁금해서였습니다.


이 책은 안팎으로 종교를 맹비난해요. 안으로는 다윈주의를 기반으로 종교적 논리가 가지는 불합리와 비논리를 지적하고 사람들이 진실이라고 믿는 종교적 믿음에 대해 일관적이지 못한 선택들을 비난합니다. 밖으로는 아이들에게 가학적으로 미치는 종교적 영향이나 지적설계가 가지는 과학적 병폐, 종교가 가져가버린 많은 기회비용들을 예로 들며 종교가 끼쳐온 악영향들을 말해요. 그리고 종교라는 틀에서 벗어나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길 꼭 당부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신과 종교에 관한 이야기를 해도 참 재미있겠지만 이번 만큼은 앞서 이야기 했던 종교와 도덕에 관해서 집중해보고자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이 책에선 종교와 도덕에 관한 이야기도 하고 있거든요.


저자는 도덕의 기원도 다윈주위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을 해요. 물론 자연선택이라고 하면 생존을 위한 이기적인 면모만 강조되어, 경쟁과 욕망추구를 우선으로 하는 뉘앙스가 강해 우리가 지닌 도덕에 대한 이유로는 적합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과감하게 인간은 생존 전략 중의 하나로 이타적인 면모를 선택했다고 이야기를 하지요.2)

우선 친족 이타주의를 찾아볼 수 있어요. 우리 가족을 지키기 위한 도덕인 것이죠. 두 번째로는 호혜적 이타주의, 즉 공생이에요. 필요와 충족을 위한 일종의 거래인데 능력의 상호교환에서 서로 돕고 도움 받는 모습이 나오는 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평판 획득입니다. 도덕적인 사람이라는 평판을 획득하면서 자연선택에서 우위를 차지한다고 말해요. 네 번째로는 베품을 통해서 과시적인 관대함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죠.

전체적으로 매우 반론을 들고 싶고, 반론이 많은 주장이에요. 하지만 저자 역시 인지하고 있다고 이야기를 하지요. 그래서 저자는 논지를 더욱 발전시켜 다윈주의의 실수로서의 도덕을 말합니다.3)

원시시대 때부터 조건적으로 이루어지던 일차원적인, 그러니까 무조건적인 도덕의 모습이 아직까지 유전적 부산물로 남아있다는 거에요. 종족보존을 위해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욕구인 성욕을 예로 들며, 피임이나 불임이라는 조건으로 종족보존이라는 원래의 조건이 빠져도 성욕 자체는 남이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앞서 이야기한 다윈주의의 조건들이 빠져도 도덕이 남아있다는 거지요.

그러니까 실제로 착한 사람이란 자신의 이기를 위해 선함을 베푸는 것이고, 그조차 아니라면 그는 인류가 아주 다행이도 하나 빠뜨려놓은 나사덕분에 착할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지요. 책 전체에 걸쳐 여러가지 사례와 연구를 이야기하면서 도덕이 종교에서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하게 전해주고 있지요.


그게 좀 지나쳐서 비단 종교에서 발생하지 않았다고 해도, 사람이 가지고 있는 도덕에 관해서 너무 매몰찬 시각을 제시하기 때문에 확실히 낭만은 많이 부족해지네요.

좋은 책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어디가서 한 번 읽어보라는 추천을 하기엔 꺼려집니다. 저자가 직설적으로 말하고 있어서 조금은 극단적인 면들도 있기 때문에요. 하지만 그 덕분에 읽기는 쉽고 논지가 항상 뚜렷해서, 유신론이나 무신론을 떠나서 한 번은 읽어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는 생각은 항상 하고 있어요.



껍데기 이야기

원제는 The God Delusion입니다. 정직하게 번역을 했다면 '신이라는 착각'정도로 할 수 있겠지만 '만들어진 신'이라는 제목은 정말 좋은 제목이라고 생각해요. 책 내용을 왜곡하지 않으면서도 훨씬 품위가 있어보이거든요.

하지만 전반적으로 책 디자인은 조금 아쉬운 편이에요. 깔끔하기는 해도 제목만큼의 품위는 담지 못한 것 같아서요.



주렁주렁 굴비

1) 레 미제라블, 빅토르 위고 지음, 방곤 옮김, 범우사 출판

2) 이기적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 옮김, 을유문화사 출판

3) 눈먼 시계공, 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용철 옮김, 사이언스북스 출판

Posted by MoonGoM